[경상시론] 정치는 진흙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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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변호사회 작성일17-11-16 09:47 조회4,1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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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자기 주변에 아끼는 사람이 정치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정치판은 진흙탕인데 그거 뭐할라꼬 하느냐’면서 도시락을 싸다니면서까지 말리고 싶다고 할것이다. 가족들은 더군다나 돈도 없고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는데 떨어지면 패가망신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일쑤이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정치꾼이라고 비하하고 사기꾼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일반시민들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권력에 다가가고 싶어서 입신양명이라는 허울아래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옛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위사람들은 ‘고시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한번 중독되면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변호사는 칼 안든 강도다’라기도 하면서 디스하기도 한다. 물론 되기만 하면 좋겠지라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응원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치지망에 대한 입장과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기존 정치는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또는 국민의당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국민 생활과는 동떨어진 계파간의 대립이 주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된다. 그들은 주민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투쟁이나 자리다툼을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줄서기나 거수기로 낙인 찍히고, 마음은 갈대고 몸은 철새다라는 말까지 듣는다. 정치라는 판에 정책이 설자리가 없고 신의라는 것은 밥 말아 먹었는지, 엿을 바꿔 먹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사법시험을 생각했던 학생들은 강자에 억눌린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단죄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꿈꾸면서 목표를 잡았을 것이다. 법학과에 수석 입학한 학생들의 언론 인터뷰에서도 사회정의를 위해 법대에 진학한 것은 일관되게 확인된 내용이다. 그런데 사법시험이라는 것이 호락호락했으면 좋으려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은 몇 번이고 떨어지면서까지 사법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준비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꿈은 퇴색되고 변질돼 간다. 결국은 무조건 시험을 붙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족이 산다는 단계까지 간다.
변호사나 판·검사를 오래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아니요.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준비하고 했던 그 시절이 변호사를 하고 있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사무실을 운영하기에도 바쁘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나 복잡한 사건들에 치여서 마지못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력이 오래된 정치인들에 묻고싶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아마도 행복하지 않을 것같다. 실제로 행복하지 않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보며 어떨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처럼 사회정의 실현과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이리 저리 줄서고 줄세우며 표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얻었으면 한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정책으로 승부하고 정상적이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진정 행복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촛불이라는 거대한 홍수가 쓸고 지나간 하천에 비유할 수 있다. 무너진 제방을 복구할때는 물의 흐름을 잘 살펴서 물의 흐름을 막는 제방이 아니라 물길을 잘 유도하는 제방을 쌓아야 할것이다. 민심에 역행하는 제방은 또 다시 민심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꽃길이 아닌 진흙탕이 맞다. 모래밭이나 자갈밭이 아니기에 참으로 다행이다. 비리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기지 못하겠지만 권력은 하늘과 같은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비리법권천을 되새겨야 한다.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는 아름다운 연꽃이 필 수는 없겠지만 진흙탕 정치판에서는 연꽃이 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장사꾼들 중에도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정치도 권력이나 계파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나 사람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한다면 바닷가의 뻘밭에 낙지나 조개 등의 온갖 생물들이 잘 살 듯이 정치판의 진흙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정치꾼이라고 비하하고 사기꾼이라고 욕하기도 한다. 일반시민들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권력에 다가가고 싶어서 입신양명이라는 허울아래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냉소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옛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위사람들은 ‘고시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한번 중독되면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변호사는 칼 안든 강도다’라기도 하면서 디스하기도 한다. 물론 되기만 하면 좋겠지라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응원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치지망에 대한 입장과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기존 정치는 최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또는 국민의당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국민 생활과는 동떨어진 계파간의 대립이 주로 매스컴을 통해 보도된다. 그들은 주민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투쟁이나 자리다툼을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줄서기나 거수기로 낙인 찍히고, 마음은 갈대고 몸은 철새다라는 말까지 듣는다. 정치라는 판에 정책이 설자리가 없고 신의라는 것은 밥 말아 먹었는지, 엿을 바꿔 먹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사법시험을 생각했던 학생들은 강자에 억눌린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단죄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꿈꾸면서 목표를 잡았을 것이다. 법학과에 수석 입학한 학생들의 언론 인터뷰에서도 사회정의를 위해 법대에 진학한 것은 일관되게 확인된 내용이다. 그런데 사법시험이라는 것이 호락호락했으면 좋으려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은 몇 번이고 떨어지면서까지 사법시험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준비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꿈은 퇴색되고 변질돼 간다. 결국은 무조건 시험을 붙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살고 가족이 산다는 단계까지 간다.
변호사나 판·검사를 오래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아니요.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준비하고 했던 그 시절이 변호사를 하고 있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가족을 건사하고 사무실을 운영하기에도 바쁘고 골치 아픈 사람들이나 복잡한 사건들에 치여서 마지못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력이 오래된 정치인들에 묻고싶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아마도 행복하지 않을 것같다. 실제로 행복하지 않다면 초심으로 돌아가 보며 어떨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처럼 사회정의 실현과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이리 저리 줄서고 줄세우며 표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마음을 얻었으면 한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정책으로 승부하고 정상적이고 정의로운 일을 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진정 행복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촛불이라는 거대한 홍수가 쓸고 지나간 하천에 비유할 수 있다. 무너진 제방을 복구할때는 물의 흐름을 잘 살펴서 물의 흐름을 막는 제방이 아니라 물길을 잘 유도하는 제방을 쌓아야 할것이다. 민심에 역행하는 제방은 또 다시 민심에 의해서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꽃길이 아닌 진흙탕이 맞다. 모래밭이나 자갈밭이 아니기에 참으로 다행이다. 비리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기지 못하겠지만 권력은 하늘과 같은 민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비리법권천을 되새겨야 한다.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는 아름다운 연꽃이 필 수는 없겠지만 진흙탕 정치판에서는 연꽃이 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장사꾼들 중에도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정치도 권력이나 계파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나 사람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한다면 바닷가의 뻘밭에 낙지나 조개 등의 온갖 생물들이 잘 살 듯이 정치판의 진흙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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