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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 절제의 미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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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변호사회 작성일18-02-05 11:12 조회3,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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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조선시대 500년은 거의 상시적인 금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물론 흉년이 들면 단속의 정도가 더 엄격해졌다. 그 와중에도 우리조상들 중에는 단속을 피해서 밀주를 담가 마시기도 했을 것이다. 왜 흉년기에는 금주령이 더 엄격해졌을까? 모든 술은 곡식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으로, 술을 담그어 마시게 되면 그 몇 배의 사람들이 배를 곯아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잔의 술이 배부른 것도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는 유흥일 수 있는 술이 누구에게는 목숨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랏님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민생이나 애민사상이 반영된 것이 금주령이라고 할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왜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못먹게 했을까? 돼지는 양과는 달리 풀을 먹지 못하고 곡식을 먹는 동물이다.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사람이 먹어야 할 밀을 돼지에게 먹인다면 누군가는 굶어야 한다. 고기 한근을 얻기 위해서는 아마도 밀 열근을 먹여도 모자랄 것이다. 누구에게는 미각을 돋구는 돼지고기가 누구에게는 생명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초원지대인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식용을 금하는 것은 부자들의 만용을 경계하고 취약계층을 배려한 휴머니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우선 소는 농사를 짓는데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 농업생산성을 눈에 띄게 향상시켜준다. 소똥은 숲이 부족한 인도에서 훌륭한 연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소는 사람에게 필요한 우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소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잡아서 먹는 것보다 소를 아끼고 같이 생활하는 것이 훨씬 더 사람들에게 유용했던 것이다.

필자는 출퇴근시간에 차량이 막힐 때 뜬끔없이 도로교통체계에도 민주주의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전자 누구나 교통체증을 피해서 조금이라도 더 빠른 진행을 원할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마음 급한 사람들이 교차로에서 만나면 동서남북의 어느 방향에서 온 차량이든 공평한 적색과 녹색·황색의 신호체계를 지켜야 한다. 만약 황색신호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가려고 꼬리물기 등으로 교차로에 진입한다면 단번에 차량들은 교차로 안에서 서로 뒤엉켜 더욱 혼잡한 교통상황을 유발할 것이다.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자신이 조금 빨리 가기 위해서 신호를 조작한다면 다른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은 어떤 유력자가 빨리 간 것보다도 더한 시간만큼을 늦게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당한 신호를 본 다른 사람들의 불평불만은 높아질 것이고 자신들도 신호체계를 조작하려 들것이다.

술에는 양주, 소주, 맥주, 막걸리 등이 있다. 밥은 보리밥이나 쌀밥, 콩밥에 따라서 밥그릇이 차이가 나지않지만 술잔은 양주잔, 소주잔, 맥주잔, 막걸리 잔으로 엄격하리만치 구별돼 있다. 혹자는 술잔의 크기는 달라도 한잔에 들어가는 알콜의 양은 거의 같다고 한다. 술의 종류에 따라서 술잔의 크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양주를 맥주잔이나 막걸리 잔에 부어서 마시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일정 정도의 혈중알코올 농도가 넘으면 주량이라는게 있어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토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돈이나 권력에는 혈중알코올농도와 같은 주량 제한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술이나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곡식이나 돈이 있는 사람과 그것이 없는 사람들의 사이에 갈등이 있다. 교차로의 교통신호체계를 자기의 진행방향으로 유리하게 변경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들간의 갈등이 있다. 술과 같이 일정한 양 이상의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면 비틀비틀 취하는 것과는 달리 돈이나 권력은 가지면 가질수록 힘이 세지고 더 똑똑해지고 있다. 돈이나 권력에도 조선시대의 금주령이나 이슬람의 돼지고기처럼 휴머니즘이 깃들 수는 없는 걸까? 돈이나 권력도 독한 술이면 작은 잔에 부어서 마시는 것처럼 절제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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