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 지주와 소작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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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변호사회 작성일17-09-11 11:21 조회4,0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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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규 법무법인 재유 울산대표변호사 변리사
가을 문턱 저녁이라 제법 선선하다. 필자가 긴 팔 와이셔츠를 입은 지 며칠 되었다. 선풍기 없이 야근을 하는데도 땀이 나지 않을 정도이고 풀벌레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그러나 일반 소시민들은 아직도 등에는 땀이 나고, 요롱소리나게 뛰어다녀야 한다.
예전의 지주만큼 팔자 늘어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요즘의 사업주들과는 달리 경쟁이라는 것이 없어서 기술개발의 압박, 영업에 대한 부담, 은행대출상환 및 각종 세금에 대한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조합과의 갈등이나 임단협 또는 파업이나 국제경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집사나 마름이 추수철에 소작지를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기만 하면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 차고 그 곳에서 인심도 넘쳐났을 것이다. 반면 소작농만큼 힘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출의 50%를 떼주고 나면 아끼고 버리지 않아도 그들의 가족이 보릿고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양극화의 구조를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 해방 후의 농지개혁이었다. 3정보 이상 대지주의 농토를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들에게 유상 분배해 준 것이다. 9대를 이어온 경주 최부자의 영화가 막을 내린 것도 농지개혁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지주는 은행, 보험사, 통신사, 프랜차이즈 사장이나 건물주 등의 얼굴로 살아있고 소작농은 일반 시민들의 모습으로 우리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월수입 300만원이나 500만원을 올리는 시민들은 담보대출로 구입한 집에서 매달 월세 명목으로 은행에 대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자신과 마나님, 아이들의 핸드폰 요금을 통신사에 꼬박꼬박 납부하고 자동차의 할부금과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기름 넣을 때는 유류세, 술 마실 때는 주세, 담배 피울 때는 담뱃세를 어김없이 내어야 한다. 국민연금과 생명보험 등 각종 보험료도 내야 한다. 전기, 수도 등의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도 피해갈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학원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족이나 부모, 형제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나 모임의 회비나 찬조금, 경조사비도 피할 수가 없다. 결국 일반 시민들은 새벽같이 일해도 결국에는 자기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얼마 남지 않고 항상 지갑이 고프기 마련이다.
옛날에도 부잣집 아이들은 요즈음의 대기업 직원들처럼 쌀밥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다녔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중소기업의 노동자와 같이 부모들과 매일 논밭에서 일해도 보리밥이나 갱죽을 먹고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옷을 입어야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 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즉 적자와 서자의 구별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그 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67년생인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가방이 아닌 책보자기가 있었고, 하굣길에는 보온도시락이 아닌 양은도시락 안에서 울려 퍼지는 숟가락들의 합창 소리가 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을 안고 우리는 숟가락소리가 더 크게 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도 매일 같이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면서 등하교를 하고 짱돌을 던지면서 울분을 달랬지만 졸업 후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지금 생각하면 아주 행복한 세대였던 것 같다.
우리들은 조금만 옆을 돌아보면 양극화의 끝에서 너무나 힘들어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을 때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힘이 다 빠진 어른들은 장성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건장한 자식들도 일자리가 없고, 가정적 불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의 어린아이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복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포퓰리즘과 그리스같은 몰락한 국가들을 동시에 떠올리기 십상이다. 핵가족으로 가족구성원들이 변화하고 친근한 동네주민이라는 사회결속력이 없어진 우리 사회의 변화 그리고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서 복지는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문제가 되었다. 대지주들이나 금수저들의 극단적 반발없이 소작농들이나 흙수저들의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는 농지개혁과 같은 것은 없을까?
예전의 지주만큼 팔자 늘어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요즘의 사업주들과는 달리 경쟁이라는 것이 없어서 기술개발의 압박, 영업에 대한 부담, 은행대출상환 및 각종 세금에 대한 걱정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조합과의 갈등이나 임단협 또는 파업이나 국제경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집사나 마름이 추수철에 소작지를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기만 하면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 차고 그 곳에서 인심도 넘쳐났을 것이다. 반면 소작농만큼 힘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출의 50%를 떼주고 나면 아끼고 버리지 않아도 그들의 가족이 보릿고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런 양극화의 구조를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 해방 후의 농지개혁이었다. 3정보 이상 대지주의 농토를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들에게 유상 분배해 준 것이다. 9대를 이어온 경주 최부자의 영화가 막을 내린 것도 농지개혁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지주는 은행, 보험사, 통신사, 프랜차이즈 사장이나 건물주 등의 얼굴로 살아있고 소작농은 일반 시민들의 모습으로 우리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월수입 300만원이나 500만원을 올리는 시민들은 담보대출로 구입한 집에서 매달 월세 명목으로 은행에 대출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자신과 마나님, 아이들의 핸드폰 요금을 통신사에 꼬박꼬박 납부하고 자동차의 할부금과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기름 넣을 때는 유류세, 술 마실 때는 주세, 담배 피울 때는 담뱃세를 어김없이 내어야 한다. 국민연금과 생명보험 등 각종 보험료도 내야 한다. 전기, 수도 등의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도 피해갈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학원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족이나 부모, 형제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나 모임의 회비나 찬조금, 경조사비도 피할 수가 없다. 결국 일반 시민들은 새벽같이 일해도 결국에는 자기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얼마 남지 않고 항상 지갑이 고프기 마련이다.
옛날에도 부잣집 아이들은 요즈음의 대기업 직원들처럼 쌀밥을 먹고 좋은 옷을 입고 다녔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중소기업의 노동자와 같이 부모들과 매일 논밭에서 일해도 보리밥이나 갱죽을 먹고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옷을 입어야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 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즉 적자와 서자의 구별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그 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67년생인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가방이 아닌 책보자기가 있었고, 하굣길에는 보온도시락이 아닌 양은도시락 안에서 울려 퍼지는 숟가락들의 합창 소리가 있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을 안고 우리는 숟가락소리가 더 크게 나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대학 다닐 때도 매일 같이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면서 등하교를 하고 짱돌을 던지면서 울분을 달랬지만 졸업 후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지금 생각하면 아주 행복한 세대였던 것 같다.
우리들은 조금만 옆을 돌아보면 양극화의 끝에서 너무나 힘들어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을 때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지금은 힘이 다 빠진 어른들은 장성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건장한 자식들도 일자리가 없고, 가정적 불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의 어린아이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복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포퓰리즘과 그리스같은 몰락한 국가들을 동시에 떠올리기 십상이다. 핵가족으로 가족구성원들이 변화하고 친근한 동네주민이라는 사회결속력이 없어진 우리 사회의 변화 그리고 심각한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에서 복지는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문제가 되었다. 대지주들이나 금수저들의 극단적 반발없이 소작농들이나 흙수저들의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는 농지개혁과 같은 것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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