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 시민배심원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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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울산변호사회 작성일17-08-24 11:17 조회3,8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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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정부는 ‘탈원전’ 공약의 핵심인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해 공론화 작업을 거친 후 그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는 발표를 했다.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약 13년 전 울산 북구의 시민배심원제 소동이 떠올라 우려스런 마음이 앞선다. 당시 시민 배심원제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정성 확보를 위해 유의할 점 몇 가지를 추억해 본다.
2003년께부터 진보 성향의 북구청장은 중산동에 살아있는 지렁이에게 음식물쓰레기를 섭취하게 해 그 배설물을 퇴비로 사용하는 소위 친환경 자원화 시설의 건립을 추진했다. 당시 음식물쓰레기는 소각, 해양투기, 땅속매몰 등의 방식으로 처리 해왔으나 모두 2차 환경오염을 초래했기 때문에 친환경 처리 방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중산동 주민들은 악취공해를 우려해 적극 반대 입장을 나타냈으나 북구청에서는 주민 님비현상으로 몰아붙이며 강행 방침을 고수했다. 주민 2명이 구속되고, 아이들을 등교시키지 않는 등 저항이 극심해지자 북구청은 13개 시민단체가 각 3명씩을 추천하고 천주교와 기독교 인사 6명을 더한 45명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해 주민과 북구청 양쪽의 의견을 들은 후 설치 여부를 찬반 투표로 결정하자는 시민배심원제를 들고 나왔다.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필자를 배심원단에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대리인 역할을 맡겼다. 사안의 쟁점은 지렁이를 통한 음식물쓰레기처리 분해방식이 가능한가, 이 과정에서 악취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26억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이 같은 친환경 시설의 건립이 가능한가 등이었다.
이 쟁점은 얼핏 보아도 환경공학자 등의 전문가들이 밝혀야 할 사항이라 주민 측 대리인은 전문가의 증언과 설계도의 감정 등을 간곡히 요구했다. 무지한 배심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돈벌이에 눈이 먼 시공업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 북구청의 손을 들어 주었다. 결국 악취 공해와 처리 불가로 가동 2년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렇듯 시민배심원제는 국민과 소통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는 그럴 듯 해보이지만 이를 통해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는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는 전문성에 관한 문제이다. 배심원들이 핵의 안전성과 경제성, 대체에너지의 실효성, 에너지 정책의 장기 계획 등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 없이는 책임있는 찬반의사를 표시하기가 쉽지 않다. 배심원들에게 어떻게 전문 지식을 전달하고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 큰 관건이다. 전문성에 대한 이해없는 찬·반은 감성적인 인기투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중립성 확보이다. 대부분의 시민 단체 소속의 배심원들은 나름의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장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교수들도 대부분 입장을 정하고 나서는 경향이 많아 결국 어느 진영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결론이 정해진다.
세번째로는 정부가 선임한 공론화위원회가 주도해 만든 배심원단의 공정성을 반대파들로부터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찬·반의 주체를 누구로 인정해 협의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찬·반측이 주장하는 사실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이 필요하므로 배심원들의 증거를 통한 사실 확정 방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형사소송에서 미국의 배심원제도나 우리의 국민 참여 재판의 경우는 증거를 통한 사실 확증 방법을 잘 알고 있는 판사가 주도하는 하기 때문에 이를 지켜본 배심원들의 유·무죄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시민배심원제가 포퓰리즘적 정치 술수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적 갈등 해소의 전범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결론에 수긍할 수 있는 공정성 확보가 생명이라 할 것이다.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결론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울산 북구의 배심제 실패로 약 30억원을 날렸지만 이번에 실패 할 경우는 수조원의 혈세가 날아간다. 판돈이 커진 만큼 숙의에 숙의를 거듭하기를 바라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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